Note 1.1

Jino PARK's arts work note

Archive for the ‘1 picture 1 day’ Category

하루한점 81 – John Carpenter – Assault on precinct 13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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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펜터의 걸작이라는 소문은 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좀비 영화풍의 포스터 때문에 감상을 미뤘지요. 그러다 얼마전, 묵은 숙제 하는 기분으로 틀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만족했습니다. 내가 왜 이걸 여태 안봤을까 하고 후회 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보다 보니 이미 본 듯한 영화입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이 영화의 리메이크를 먼저 봤더군요.
에단 호크와 로렌스 피쉬번이 나오는 거. 이 영화도 상당히 좋은 영화입니다. 재미도 있고, 배우들 연기도 좋았지요. 뛰어난 액션 영화였습니다만, 원본을 보고나니 사리곰탕면과 사리곰탕 정도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표면적으로 다른 점도 매우 많습니다만, 이 두 영화 사이에는 뭔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매우 작은 것이지만, 결정적인 것이지요. 작지만, ‘이것이야말로 영화’라고 할 수도 있고, ‘저것은 영화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입니다. 그 작은 차이가 뭔지 생각하는 재미로 영화 보는 내내 머릿속 한 켠이 간질간질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정체불명의 괴한들에 대항해 고립 된 파출소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원본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요약해봅니다.
영어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13서 습격사건쯤 되겠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제목과 함께 주제가가 흘러나옵니다. 신디사이저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자음향입니다. 경비를 아끼려고 했던지 존카펜터가 직접 작곡했더군요. 긴장감과 촌스러움이 묘하게 섞여있습니다. 이 주제가는 영화진행 내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일관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이 매우 특이해서, 음악이 영화의 등장인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토요일 새벽 3시 10분.
소총으로 무장한 정체불명의 갱단의 은신처입니다. 경찰들이 갱단을 습격해 전원 사살합니다. 라디오에서 이 뉴스가 흘러나오고, 이 뉴스를 들은 동료 갱단들은 잭나이프로 팔뚝을 그어 사발에 피를 담아 피의 복수를 맹세합니다.
로스엔젤레스
토요일 오후 4시 50분.
잘생기고 젊은 흑인 경관이 차를 몰고 야간근무를 하러 갑니다.
토요일 오후 5시 10분
캘리포니아 형무소. 중죄인들의 이송이 시작됩니다. 그중에는 도시 전설이라 할만한 거물범죄자가 끼어있습니다.
토요일 오후 5시 37분
차를 타고가던 어린 소녀와 아버지는 우범지대로 잘못 들어섭니다. 바로 그곳에 방금 피의 맹세를 끝낸 갱단원들이 소음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하고 차에 타서 어딘가로 갑니다.
토요일 오후 5시 50분
주인공은 근무지에 도착합니다.
무대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찰서급의 건물입니다. 오늘을 끝으로 이 경찰서는 패쇄됩니다. 행정적으로는 이미 사라진 상황이고, 지리적으로도 고립된 위치에 있어서 외부의 조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곳이지요. 당연히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6시 18분
목표물을 찾아 천천히 차를 몰고가던 갱단들의 시야에 아이스크림트럭이 들어옵니다.
형무소에서 죄수들을 이송해가던 형사는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 한 죄수 때문에 13서에 하룻밤 머물기로 하고 죄수들을 13서 유치장에 넣습니다.
리메이크판에서는 이 거물범죄자를 탈취 혹은 살해하려는 것이 괴한들의 목표입니다만, 원본에서는 그야말로 우연히 벌어진 일입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전화를 하기 위해 공중전화 박스앞에 차를 세웁니다. 소녀는 아이스크림트럭의 음악소리를 듣고 아이스크림을 사러갑니다. 소녀에게 아이스크림을 판 뒤 아이스크림 장사는 갱들의 총격을 받고 죽습니다. 소녀는 아이스크림이 주문한 것과 다르다며 따지러 아이스크림트럭으로 돌아갑니다. 갱들은 소녀마저 죽입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총소리를 듣고 아이스크림 트럭으로 달려오지만, 이미 갱들은 차를 몰고 떠나고 없습니다. 아이스크림 장사는 소녀의 아버지에게 트럭에 권총이 있다고 합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아이스크림 장사의 권총을 들고 갱들을 쫓아 차를 몹니다.
7시 정각
밤입니다. 마침내 소녀의 아버지는 갱들을 따라잡습니다. 차에서 내린 갱단의 일원을 총으로 쏴 죽입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총소리를 듣고 다가오는 갱단을 피해 13서로 뛰어듭니다. 처음에 네명이었던 갱들의 숫자는 이제 여섯입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뭐라 말을 하려 하지만, 너무 놀라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다급한 표정으로 뭔가를 말하려 합니다.
잠시후 전기가 끊기고, 밖을 살피러 나간 경관이 소음총에 맞아 죽습니다. 야간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주인공이 다급히 밖으로 나가지만, 소음총에 놀라 즉시 돌아옵니다. 순식간에 호송관과 죄수들이 죽고, 남은 것은 주인공과 죄수둘, 여직원 둘입니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절반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갱들의 일방적인 공격과 그것을 가까스로 막아내며 한발 한발 물러나는 주인공들의 고군분투로 채워집니다. 괴한들은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거나(원본), 엄청난 화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리메이크).
파출소장과 범죄자와 여직원은 끝없이 공격해오는 괴한들을 상대하느라 그야말로 악몽과 같은 하룻밤을 보냅니다.
인상적은 것은 괴한들의 캐릭터입니다.
포스터에서 받은 막연한 인상만으로 좀비영화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보고나니 이 영화는 다른 의미로 완벽한 좀비영화였습니다.
갱들의 모습은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간 불량해 보이는 십대에서 이십대의 모습입니다. 이 갱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도입부의 무표정한 전자음향이 따다다다 따다다다 깔립니다. 이들의 총은 모두 소음기가 달려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의 갱들이 동시에 소음기 달린 총으로 총을 쏘아댑니다. 경찰서 집기들은 소나기내리는 운동장처럼 후두두둑 맥없이 부숴지지만 어디서도 총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갱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발자국소리도 내지 않고, 심지어 소리없이 차를 천천히 밀며 경찰서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은 그림자나 귀신같습니다. 그들은 고함도 지르지 않고, 인상도 쓰지 않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앞으로 민첩하게 달려듭니다만, 총에 맞으면 비명도 안지르고 죽습니다. 어깨건 허벅지건, 총에 맞기만 하면 억하고 소리없이 입만 벌린 채 허깨비 처럼 픽픽 쓰러집니다. 갱들의 수는 영화가 진행되는 것에 맞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하나를 죽이면 둘로 늘어나는 것이지요. 출근길의 지하실처럼 지하 유치장을 가득 메운 갱들의 모습에, 그 평범한 모습과 그 무표정함에 다시  놀랍니다. 급기야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밟고 계속 밀려드는 갱들의 모습에선 뭐라 표현하지 못 할 공포를 느꼈습니다. 막막함에 기반한 무서움이라고 할 만한 것입니다.
흔히 ‘불특정 다수’라고 표현되는 익명의 젊은이들의 소리 없는 분노인 것이지요.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영화’가 됩니다. 화면에 보이는 모든 이미지들은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되어 나를 사로잡습니다. 나는 의미심장한 것들에 사로잡힌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경험은 매우 강렬해서 마치 내가 영화상영시간 만큼의 여분의 시간을 살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여러 차례 이 경험을 떠올릴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영화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Written by jinopark

July 22, 2011 at 6:5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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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80 – Gustave Caillebotte – Les Raboteurs 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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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박물관에 있는 구스타브 까유보뜨의 대패질하는 사람들입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보고 받은 충격은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놀라웠던 것은 저 생생함이었습니다. 게다가 거친 붓질 -인상파 치곤 얌전한 편이지만, 보자르출신들에 비하면 야성적이라고 할 만한 대담한 붓질 이면서도 사진과 같은 엄정함을 잃지 않는 솜씨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역광을 받은 바닥의 반사와 깍여나간 바닥의 질감 그리고 땀에 젖은 듯이 보이는 남자들의 등을 표현한 저 빛은 인상파의 이론과 당대의 사진술과 광학에 대한 여러가지 성과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다음 느낀 것은 그때까지 겪어본적이 없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흔히 프랑스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정서. 차갑고 남성적면서도 관능적인 아름다움.

7월쯤, 오후 2시. 밖은 따가운 햇빛이 작열하지만, 그늘은 서늘한 유럽특유의 여름날씨. 오랫동안 잘 손질되었던 나무 마루에서 나는 기름냄새에 더해, 대패밥에서 나는 나무 냄새가 섞여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듯 합니다. 거기에 방금 비벼 끈 담배냄새에, 따라놓은 잔에서 나는 포도주 냄새까지 추가로 떠올리면, 어느덧 저 마루위에 서 있는듯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저의 감상은 문자 그대로 ‘바닥을 긁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 그림은 이런 이율배반적인 요소들의 환상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담한 붓질을 통한 섬세한 묘사, 인상파적인 분석을 통한 생생한 광선의 재현, 면밀하게 계획된 구도속의 역동적인 신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벌2세가 그린 기층민중의 삶. 사업가이자 판사인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부를 물려받아 화가로 입문하기 전에 이미 수집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까유보뜨입니다. 마네의 뒤를 이어 가난한 인상파 화가들의 빠트롱 역을 자임하기도 했지요.

1875년, 이 그림을 살롱에 내보지만, 너무 저속한 주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출품을 거부당한 까유보뜨가 1876년 인상파전에 출품했을때 에밀졸라가 한 평이 유명합니다. ‘너무 정확하여 부르주아가 된 그림’

기록사진과 같은 엄정함 속에 도시 노동자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매우 시대를 앞서간 태도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현대의 광고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지요. 다만 동시대를 같이 살던 사람들에게는 뭔가 좀 어색하고 불편한 태도였겠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 저택 마루공사하러 왔는데 젊은 집 주인이 아주 무표정하고 담담한 태도로 하루 종일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물론 요즘이야 현장에서 일하다가 한 컷, 뭐 이런식으로 사진찍어 블로그에 올리기까지 하니까 이상할 일 전혀 없겠지만 말이죠…

어쨌건 이 그림으로 데뷔한 까유보뜨의 작품에는 고독한 남자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그림에 필적할 만한 관능미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말이죠. 쓸쓸한 남자의 등을 그리는 차가운 도시의 화가, 구스타프 까유보뜨입니다.

오르세 박물관의 구스타프 까유보뜨 소개

Written by jinopark

July 12, 2011 at 9:4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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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79 – Sylvia Sleigh – Arakawa and Madeline Gins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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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I-20 Gallery, New York

기억은 묘한 것이어서, 몇년을 곁에 두고서도 전혀 기억 못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잠깐 스치듯이 본것이 평생 기억에 남아있기도 합니다. 이 그림은 이따금 날아오는 전시소식메일에 뭍어온  그림입니다. 옛날같으면 우체통 가득한 광고 전단 중 하나에 실린 손톱만한 사진이었겠지요.

일부러 기억을 할래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언뜬 본 그림이 몇날이 지나도록 자꾸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보면 동양화 같고, 또 어찌 보면 서양화 같기도 한 그림.

세련되고 정확한 뎃상은 아니지만, 섬세하고 질긴 선들로 그린 그림입니다. 불분명하거나 왜곡된 형태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여러번 겹쳐그린 가늘고 긴 선들이 만들어낸 질감은 마치 살갗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따듯한 피가 흐르는 듯  합니다. 선과 색채를 빌려 이 사람들의 사념을 화면에 가둬놓은 듯이 느껴집니다. 그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그림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려진 사람들에 대해 궁금하게 만드는 뛰어난 초상화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들 각자가 뿜어내는 존재감이 매우 강렬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겁니다. 동양화같기도, 서양화 같기도 하다고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양에서 그린 것 같기도 서양에서 그린 것 같기도 하다고 해야 할 겁니다. 남자를 보고 있노라면 그림을 그린 장소가 일본 어디 도심에서 떨어진 교외 한적한 곳 같기도 하고, 여자를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 파리 어디쯤 인것 같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들을 둘러싼 공기가 아주 생생하게 잘 표현되어있습니다. 30대에게서 느껴지는 느낌. 이제 다 영글어서 풋풋함은 사라지고 몸에서 저마다의 향기가 나는 시기. 적당히 나른하고 적당히 어색한 긴장된 분위기. 그 분위기가 공간을 지배하고 공간을 규정해버립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 스스로의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간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풍경.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남자는 Shusaku Arakaw(b. 6  july. 1936 – d 18 may .2010. 26), 여자는 Madeline Gins (b. 1941. 21 – )입니다. 화가는 Sylvia Sleigh (b. May 8, 1916 –  d. 24 October 2010).

슈사쿠 아라카와는 일본에서 네오다다그룹의 일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다 뉴욕으로 건너갑니다. 그때가 1961년. 25세. 뉴욕에 도착했을때 주머니에는 달랑 14달라와 마르셀 뒤샹의 전화번호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치기만만한 젊은이에게 뜻한 만큼의 운이 따르지는 않았는지, 혹은 그 전화번호가 잘못된 것이었는지, 뒤샹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5년 뒤, 어느 전시 오프닝 뒷풀이에서 입니다. 뒤샹 임종 2년 전이니까… 가까스로 소원성취했다고 해야 하나요?  다시 시간을 뒤로 돌려 1963년으로 오면, 아라카와는 비자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에 등록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납니다. 바로 마들렌 진스. 둘은 바로 의기 투합해서 The mechanism of Meaning (의미의 작동원리)라는 공동작업을 시작합니다.

여담으로 제가 이 그림을 발견한 메일의 캡션에는 이 그림이 1962년에 그려졌다고 합니다. 26세의 아라카와, 21세의 진스 그리고 46세의 실비아가 같이 모여 앉아 있는 방안 풍경은 상상만 해도 두근거릴 정도로 신화적인 만남이었겠지요. 적수공권으로 이제 막 일본에서 건너 온  젊은 네오다다이스트와 놀라운 재능을 지닌 뉴욕 시인 아가씨, 그리고 이제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영국 출신의 페미니스트 화가의 만남이란 상상만 해도 상큼하고 싱그럽고 가슴이 뛰는 만남이었겠습니만, 모든 공식적인 자료에 아라카와와 진스는 63년에 만났다고 하네요.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같은 그림인데 1971년으로 캡션이 달려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1971년 이라면, 그로부터 9년 뒤니까. 아라카와는 35, 진스는 30, 슬레이는 51입니다. 훨씬 납득이 가지만, 한편으로 김세는 느낌이지요.

다시 아라카와와 진스의 공동작업으로 돌아오면 그들의 주제는 처음부터 영원한 삶이었습니다만, 그것을 뚜렷이 드러내고 작업하기 시작한 것은 건축에 손대면서 입니다. 1987년 그들은 Architectural Body Research Foundation(건축적 신체 연구 재단)을 설립하고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We have decided not to die.

우리는 죽지 않기로 했다. 아라카와와 진스의 홈페이지 첫 화면 문구입니다. 어떻게? 늙지 않는 집을 만드는 거지요.

창문은 너무 높거나 낮고, 문턱은 제각각이어서 항상 발에 걸리고, 부엌은 바닥이 들쭉날쭉이어서 이리저리 오르고 내려야 하는, 아무것도 제대로 된 것 없는, 세상에서 가장 비 능률적인 집입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불편하도록 아주 세심하고 철두철미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당연히 이 집에서 살면 몸을 한번이라도 더 움직여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운동이 되고 따라서 젊음과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는 집인 것이지요. 불편하기만 한 집이라면 누가 거금을 들여가며 이따위 집을 짓고 그곳에 살겠습니까마는, 실은 예술작품이라고 할 만큼 무척 아름답고 유쾌한 집입니다. 그러니까 집이라기 보다는 놀이터에 가까운 것이지요. 하루종일 놀이터에서 노닥거리는 느낌으로 평생을 산다면 나이 먹을 틈이 없겠지요.

이런 집을 지으며 살던 부부의 이야기는 동화같습니다. 7, 80년대 일본과 미국의 기록적인 호황속에 네오다다이스트와 시인이 만든 놀이터 같은 집은 젊은 부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지요. 각자 작가로도 성공해서 아라카와는 동양인 최초로 구겐하임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합니다. 아라카와와 진스의 삶을 추적하다보면 너무나 비현실적인 성공스토리에 마음이 붕 뜨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운좋은 부부들의 너무나 초현실적인 전개에는 어떤 어두운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비누방울처럼 가볍고 유쾌한 이들의 삶에 쓰나미같은 현실이 덮칩니다. 버나드 매도프. 지금의 세계적인 경제난의 신호탄을 쏜 인물.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사범. 폰지사기라는 아주 간단한 피라미드 사기 수법으로 전세계 재벌과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1307억 달러의 사기를 천 인물. 이 매도프의 아내를 1994년 한 전시회의 오프닝에 만납니다. 이들 부부는 매도프를 중요한 후원자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전 재산을 매도프의 펀드에 투자했고 2008년 매도프는 구속되고 이들 부부는 파산합니다. 아라카와는 2010년 뉴욕에서 숨집니다. 클라이맥스에서 끝나는 영화같은 삶이지요. 관객입장에선 어리둥절한 결말입니다만, 작가본인에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전개라고 해야겠네요.

우연히 만난 그림 한 점에 얽힌 이야기였습니다.

아라카와와 진스의 홈페이지

실비아 슬라이의 홈페이지

Written by jinopark

July 10, 2011 at 8:4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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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78 – Jacques Brel – Ne me quitte pas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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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v/cBMDX2sR27U?fs=1&hl=en_US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나뭇잎으로 덮힌 길이나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의 모습이 제법 쓸쓸해 보입니다. 창 밖에 바람 부는 풍경을 보다보니 이 노래가 생각납니다.
자크브렐의 느므끼뜨빠입니다.
가사를 소개해야 하는데 제가 인터넷에서 찾은 것은 제가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때의 느낌하곤 좀 다릅니다. 그래서 직접 번역해 봤습니다.
결국 원본과 전혀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만, 제가 느꼈던 감상을 옮기려 노력한거라고 이해해주시길… 이 하루한점 시리즈를 시작하면서도 밝혔지만, 여기서 제가 하는 소리를 곧이 곧대로 믿고 다른 데 가서 써먹었다간 망신당하기 쉽습니다. ㅎㅎㅎ

가지마라
잊어
다 잊을 수 있어
이미 지난 일이야
같이 잊자
오해들
잃어버린 날들
망설이던 시간들
잊자
다그쳐 묻느라
행복했던 가슴에
죽도록 괴로운
상처만 남겼지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내가 구해다 줄께
물기 한 방울 없는
저 먼 나라의
빗물로 만든 진주
죽어서라도 땅을 파
황금과 햇살로
네 몸을 덮어줄께
나라를 세워줄께
사랑이 왕이고
사랑이 법이고
네가 여왕인 나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너만을 위한
동화를 지어줄께
단 두번 만남에
심장이 불타버린
두 연인의 이야기
언젠가 네가 만날
사랑을 얻지 못해 죽은
어떤 왕의 이야기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끔은
늙은 화산이
불을 뿜기도 하고
그렇게 타버린 땅은
사월이 되면
더 많은 보리가 자라지
그 들에 밤이 오면
하늘도 불타올라
검은 땅은 붉은 하늘과
하나로 합치잖아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이제 울지 않을께
말하지 않을께
숨어서
보기만 할께
춤추고 미소짓는 너의 모습
듣기만 할께
노래하고 웃는 너의 목소리
그러니까 나를
네 그림자의 그림자라도
네 손의 그림자라도
네 개의 그림자라도 되게 해줘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사랑하는 사람의 개가 아니라, 개의 그림자가 되서라도 곁에 있고 싶다는  겁니다. 저 선량한 굵은 눈썹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듯한 검고 큰 눈의 자크는 노래가 끝나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듯 합니다. 저러다 저 남자가 그림자가 되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자크브렐버전의 느므끼뜨빠는 처절하게 처량하면서, 우아하고 시적입니다. 분출 직전의 화산과 같은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 노래를 잘 하는 선배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이렇게 끈질기게 붙잡지는 못하잖습니까? 게다가 이 노래는 잘 하면 안되는 겁니다. 잘나고 멋진 숫컷이 되어 이 노래를 아무리 근사하게 불러본들 이 노래의 본질엔 다가갈 수 없는 겁니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때가 되면 탁 놔주면서 갈테면 가라며 제 가슴 쥐어뜯는 편이 후련한 것이겠지요. 그러니, 자크브렐 만큼 망가지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제가 니나시몬즈의 느므끼뜨빠를 처음 들었을 때,기분이 어땠겠습니까?

http://www.youtube.com/v/TI8F6DbB2cE?fs=1&hl=en_US

자크브렐은 망가진 와중에도 지가 왕이고 휴화산입니다만, 니나시몬즈에게는 그게 다 희망사항입니다. 자크브렐의 느므끼뜨빠가 집착을 시적인 우아함으로 승화시켰다면, 니나시몬즈의 느므끼뜨빠에 승화 따위는 사치. 이별의 통고를 듣고 정신이 나가서, 간다는 사람 뒤꽁무니를 홀딱벗고 쫓아가, 발목을 붙잡고 발가락을 빨아대며 눈물 콧물 흘리는 힘 없는 여자의 노래인 것이지요. 자크가 하던 허황된 약속들은 막판에 몰린 남자의 애원같은 것이지만, 니나가 하는 저 맹세들은 한탄입니다. 그러겠다는게 아니고 왜 그러지 못했을까라며 혼자 중얼거리는 거지요.

아마 니나도 자크도 사랑을 되돌릴 순 없을 겁니다. 하긴 그러니까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거겠지요. 눈물이 노래가 되어 입으로 흘러나옵니다.

Written by jinopark

November 16, 2010 at 4:4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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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77 – Michelangelo Pistoletto – Mappamondo 19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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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일요일에 좀 쉬려고 했더니 자꾸 미술관에 재미있는 거 한다고 그럽니다. 뭐냐고 그랬더니, 움직이는 예술이랍니다. 예술? 그거 죽었다던데? 아직 살아있나? 그 예술이 공 처럼 생긴건데, 사람이 민답니다. 그럼 사람이 미는거네. 웃기긴 하네. 뭐 이런 식으로 깐죽거리다가 귀 잡혀 끌려나가 본 전시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또의 전시였습니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예술’이니 뭐니 거창한거 하나도 없고, 그냥 신문지 뭉친 큰 공을 애들이랑 같이 밀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그게 다야 다. 그런데, 이게 은근히 재미있더랍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와 몰려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막 웃고 그러니까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알고 또 사람들이 몰려오고 뭐 그런 식으로 구경꾼들이 점점 불어나면서 구름 관중을 몰고 필라델피아 시내를 신나게 놀면서 몰려다니다 미술관으로 돌아오는 것이 이날 ‘움직이는 예술’퍼포먼습니다. 히히.
이탈리아 작가 할아버지가 딱 서있는데 참 멋지시더라구요. 사람이 멋지니까 이 소박하고 재미있는 예술이 더 더욱 궁금해집니다.
본 전시를 보면, 피스톨레또가 젊어서 그린 그림들과, 이 신문지로 만든 공 그리고 그 뒤의 개념미술들이 있습니다.
스토리는 재능있고 젊고 멋진 순도 100프로 이탈리아 남자 피스톨레또가 이제 막 스타작가가 되려는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젊은 피스톨레의 그림은 관능적이고 섬세하고 육감적이고 세련되었습니다. 흡사 이탈리아 명품구두를 보는 느낌입니다. 그가 그린 그림은 반듯한 이탈리아 양복을 입은 자기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그린 전신 초상이거나, 파티에 모인 선남선녀들의 뒷모습을 유리나 유리판에 버금가는 스테인레스스틸에 그린 그림들입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흑백 영화같은 우아한 정조가 흐릅니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젊고 멋진 작가를 사람들이 가만 놔뒀었을리 없었겠죠. 낼름 다가가서 뉴욕에 데뷰시키려고 하지만, 재능있고 젊고 멋진 순도 100프로 이탈리아 마초 피스톨레또는 그 제안들을 다 거절하고 느닷없이 신문지를 뭉쳐 커다란 공을 만들어서 차 뒤에 싣고 애인이랑 시내로 놀러가버립니다.
무릎 탁탁 튕기면서 담배 하나 꼬나문 피스톨레또의 모습은 성공한 록스타같습니다.
애인이랑 공을 사이에 두고 다정히 걸어다니기.
공이랑 무단횡단하기.
중앙분리대에서 놀기.
쇼핑몰 돌아다니기.
차 사이에 공 파킹하기.
뭐 이런 시시껄렁한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데, 이걸 보고 구경꾼이 하나 둘 몰려듭니다.
이젠 피스톨레또는 뒤켠에 있고, 구경꾼들이 주도적으로 이걸 가지고 놉니다. 피스톨레또는 그저 거들 뿐. 밤이 되면, 그야말로 공과 함께하는 광란의 파티.
다 큰 어른들이 길에서 공 하나가지고 밤 세워 노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계속 보다 보니까, 이게 예술이겠구나 싶어집니다.
피스톨레또는 그 뒤로 어깨에 힘 쫙 빼고 길에서 노는 예술하기에 푹 빠져버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성공한 부자화가가 될뻔한 피스톨레또는 ‘아르떼 포베라’ 즉 ‘가난한 예술’의 거장이 됩니다.
그리고 순도 200프로의 멋진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되어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자신이 만든 공을 몰고 거리로 뛰어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는다는 이야기입니다.

Written by jinopark

November 2, 2010 at 8: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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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76 – Luis Cruz Azaceta – Tub: Hell Act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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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잉크 냄새가 좋더라. 어, 되게 몸에 안좋을 것 같은 독한 냄새. 빨간잉크, 파란잉크도 좋지만, 나는 까만 잉크가 좋다. 그 응축된 것 같은 느낌. 문끼.
욕조 가득 잉크를 붓고 다 말라 굳을 때 까지 기다리는 거지. 늘 그 냄새를 맡으며 말이지. 욕조 가득 잉크를 부으려면 욕조 가득 잉크병이 필요하지. 그 잉크 병으로 또 욕조를 만드는 거다. 그리고 다시 그 잉크병으로 만든 욕조 가득 잉크를 붓는 거지.
이런 식으로 잉크와 욕조가 점점 늘어나면, 실내 가득 강하고 독한 잉크 냄새가 들어 찰 거다.
누가 거기 몸을 뉠까. 누가 그 잉크에 흠뻑 젖을까. 새까만 잉크로 머리 끝부터 발 끝 까지 까많게.

Written by jinopark

October 20, 2010 at 9:1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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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75 – Mavis Smith – Sink or Swim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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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라입니다. 에그템페라. 중세 유럽에서 이 방식으로 성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달걀 흰자를 묽게 푼 물에 안료를 섞어 그리는 식이라, 수십번의 붓질을 하고 나서야 색이 배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붓질하고 나서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를 기다려 다시 위에 얇게 바르는 식으로 작업을 합니다. 당연히 작품 한점을 완성하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만, 엷고 투명한 막이 수십겹 겹쳐 완성된 화면은 달걀껍질처럼 매끈하고 투명한, 마치 아기 피부처럼 아름다운 물감층을 갖게 됩니다. 고급스럽고 깔끔한 재료의 특성상, 인물화를 그리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재료입니다만, 취급이 까다롭고, 작품제작기간이 너무 길고, 무엇보다 작품을 제작하는 기간동안 달걀썩는 냄새를 맡아야 하는 관계로 요새는 아크릴에 밀려 버린 재료입니다만, 어쩌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을 보면 작품 표면 자체의 아름다움에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작가는 이렇게 고풍스런 재료를 가지고 아주 현대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물의 시선이 묘하게 눈길을 끕니다. 새처럼 가벼운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 힘듭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남자의 대뇌 연장선상 원경에 가는 흰 선이 보입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남자의 머릿 속에 웅얼거림이 활자화 되어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저 창문너머 수평선 근처 요트 두 대가 떠있는 위로 단정하게 세리프쳐가며 주문처럼 되풀이하여 적힌 말입니다. 흠.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할 인간이 물에 던져지면 팔다리를 움직이지 않는 이상 가라앉는 것이야 당연한 일입니만, 물안경을 목에 걸친 채 창가에 서서 나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이 남자는 점점 손에 잡히지 않는 묘한 존재가 되어갑니다. 저러다 저 남자는 물안경을 쓰고 홱 돌아 나가 휘적 휘적 바다로 걸어들어가 헤엄을 칠 것이고, 나는 나대로 고개를 돌려 옆에 걸린 다른 그림을 보러 갈겁니다. 

Written by jinopark

July 23, 2010 at 5:1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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