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1.1

Jino PARK's arts work note

Archive for February 2010

하루한점 68 – Juan Díaz Canales (writer) and Juanjo Guarnido (artist) – Blacks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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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에 들렀다가 아침 식사 차 들렀던 식당에서 생긴 일입니다. 우리나라 해장국밥집 처럼, 아침 식사를 하러 들른 사람 들이 바글거리는, 눈 내려 싸늘한 텅 빈 아침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창 마다 김이 서려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팬 케이크 가게였습니다. 줄을 서서 오분 정도 기다리다 자리가 나 주문을 하고 커피 마시며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그 많은 테이블이 사람들로 가득 찬 모습에 제법 활기를 느끼게 됩니다.
옆 테이블에는 나이차가 많이 나 보이는 커플이 앉아 서로 다정스레 장난쳐가며 서로 손을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콧수염을 귀엽게 기른 곰같이 커다란 전형적인 미국 아저씨이고, 여자는 어딘가 남자랑 닮은 구석이 많은 오동통한 대학 이 삼년 짜리입니다. 자세히 보면 부녀사이인 것도 같고, 부녀사이라기엔 서로 바라 보는 눈길하며 여자가 하는 행동거지가 딸이 아버지에게 하는 행동이라기엔 지나치게 스킨 쉽이 많고 도에 넘치게 다정합니다. 그렇다고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의 애정 표현을 하느냐면 절대 그런 것은 아니고, 어찌보면 아이들이 투닥거리며 노는 것 같은 정도의 애정표현입니다. 조금 있자니 다른 일행 두명이 합석을 합니다. 이번에는 설명 없이도 모자간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붕어빵 엄마와 아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딸과 아버지도 상당히 서로 닮은 얼굴이고, 아들과 아버지, 어머니와 딸도 서로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가족이었구나… 그런데 이상한건, 커플로 오해 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이 부녀는 아내와 오라비에겐 관심도 없는 듯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저희들 끼리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모자도 마찬가지. 부녀와는 달리 둘다 무뚝뚝해서 별 말이 없지만, 부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그 테이블에 흐르는 공기가 하도 어색해서 저까지 무안해 질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가 일어나 계산을 하러가니, 식탁에 남은 나머지 식구들이 서로 이야기를 합니다. 서로 얼굴을 보고 묻고 대답하고 웃습니다. 조금 전까지 제가 느꼈던 긴장은 어느샌가 다 날아가고 없고, 남은 것은 그저 평범하고 화목한 가족입니다. 평범한 외모의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아침 식사인 겁니다.

착한 짐승들의 나라.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던 말입니다.
왜 이 말이 떠올랐는지는 저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냥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통해서 본 것을 설명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말이 다시 떠오른 것은, 요번에 도서관에서 이 작품을 발견하고나서 입니다.
동물을 의인화해서 현실에 대입하는 것은 만화에서는 아주 고전적인 기법입니다만, 이 작품에선 그 기법이 인간의 수성을 드러내는데 아주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짐승같은 것들이 등장해서 온갖 짐승같은 짓을 저지르는 것이지요.

그래픽 노블이라는 표현이 걸맞는, 읽고 나면 잘 만든 영화 한편을 본 것 같은 뒷 맛이 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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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jinopark

February 26, 2010 at 10:3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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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67 – Giorgio de Chirico – The Soothsayer’s Recompense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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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canvas
53 3/8 x 70 7/8 inches (135.6 x 180 cm)

키리코의 ‘예언자의 보상’입니다.

요즘 느끼는 것은, 사진은 사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수히 많은 ‘사진’을 접하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살지만, 사진은 ‘사실’을 기록한 ‘사진’일 뿐이고, 그 기록은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술이 현대 예술의 중요한 방법론일 수 있는 것도, 사진이 ‘사실 그대로의 재현’일 수 없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이 부분은 제 작업과 연결해서 할 말이 많기 때문에 일단 통과.

난데없이 애꿎은 사진에 대고 이렇쿵 저렇쿵 불평하는 이유는 요즘 미술관에서 보는 그림들이 제가 ‘알고 있던’ 그림들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원화를 미리 찾아보지 못한 제 게으름 탓이지 사진 탓이 아니지만, 이렇게 훌륭한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 억울하잖습니까?

문제는 질감입니다. 사진으로 보면, 과슈나 파스텔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텁텁한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얇게 바니쉬처리가 된, 유화입니다. 은은한 광택이 느껴져서 이 작품이 아주 아카데믹한 방식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느슨한 선으로 표현된 – 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그린 것 같은 건물과 담장등의 이미지들도 자세히 보면 자를 대고 작도한 후에 정교하게 손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묘사’라는 말이 나온 김에 하늘을 그린 것이나 텅 빈 광장 – 혹은 공터 – 혹은 사막을 그린 부분들도 사진으로 보면 단번에 쓱쓱 문질러 그린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고운 붓으로 여러번 덧칠해서 ‘묘사’한 것입니다. 얼마나 정교하게 그리려 노력했는지를 보시려면 아래 링크에 가서 그림을 확대해보시면 됩니다.

http://www.philamuseum.org/collections/permanent/51288.html

사진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는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정확히 3분 전 오후 2시 를 가리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후 2시 3분 전.
씨에스타가 끝나기 직전. 태양은 뜨겁고 바람은 빠르게 붑니다. 야자수를 실은 기차가 이제 막 남쪽 역에 도착하려합니다. 사람들은 덧창 뒤 서늘한 그늘 아래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고, 광장 한가운데 아리아드네 조각상도 잠에서 깨어나려는 듯이 보입니다.

아리아드네 옆의 빈자리에는 누가 누웠던 걸까요?
씨에스타에 빠진 아리아드네를 두고 항구로 떠난 테세우스의 자리일까요?
아하, 어쩌면 예언가에게 주어진 보상은 저 야자수를 실은 기차표가 아닐까요?

늘 서늘하고 시원한 야자수 그늘에 아래 해먹에 누워 넥타를 마신다는 그 곳. 아리아드네의 새 애인이 산다는 바로 그 곳으로 가는 기차표말입니다. 뿌 뿌우.

Written by jinopark

February 25, 2010 at 5:0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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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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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jinopark

February 21, 2010 at 5:5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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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66 – Paul Cézanne – Les Grandes Baigne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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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canvas
82 7/8 x 98 3/4 inches (210.5 x 250.8 cm)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입니다. 입니다. 영어권에선 ‘The Large Bathers’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선 ‘대수욕도’라고 표기합니다만 저는 그냥 ‘목욕하는 사람들’이라고 할랍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있는 그림은 세잔이 그리던 마지막 ‘목욕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 자체가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만한 그림이라,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유명한 만큼 무수히 많은 미술사가, 비평가, 철학자, 학자, 시인이 이 그림을 주제로 방대한 양의 글을 남겼습니다. 아마 지금도 누군가 이 작품에 대해 글을 쓰고 있을 겁니다.

세잔 스스로도 이 그림이 자기 자신의 필생의 역작이라고 여기고 작업에 몰두해서, 수많은 스케치와 드로잉과 습작과 연작을 남겼습니다만, 고집불통 세잔 영감은 그중에 제대로 완성된 그림은 단 한 점도 없다고 생각하실게 분명합니다.

세잔 그림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당대의 화가들이 남불의 진정한 숨은 고수로 세잔을 꼽을 때도 몇 년에 걸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고치고 또 고치던 세잔이 마음 먹고 그린 그림인 만큼, 고치고 고치고 다시 고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치고도 그림에 빈 곳을 메꾸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몇 년을 하다가 다시 고치고 또 고치기를 장장 7년을 하고도 차마 끝내지 못한 그림이 바로 이 ‘목욕하는 사람들’입니다.

복도에 있던 고호의 그림을 보다 세잔의 이 그림을 보면, 밑바탕이 훤히 보이는 이 그림의 그 얇디 얇은 두께가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그 망설임, 그 고심의 시간들이 여백으로 남은 캔버스입니다. 그 빈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곳에 채워졌을 수 많은 가능성이 무지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미완성이라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손을 대야 할 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끝내지 못 한 그림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그림인 것이지요.

아래는 미술관의 설명입니다.
http://www.philamuseum.org/collections/permanent/104464.html

Written by jinopark

February 20, 2010 at 10:1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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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65 – Shepard Fairey – Obey Giant Campa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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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선 당시 지지 포스터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쉐파드 페어리입니다. 앤디 워홀 미술관에서 쉐파드 페어리의 개인전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려고 했는지, 길 건너 주차장 벽과 공사장 가림막에 작업을 해 놓았습니다. 
쉐파드의 작업을 보면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점이 많이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트리트 아트에 광고기법을 접목했다는 점입니다. 
요즘은 워낙 스트리트 아트나 스트리트 컬쳐를 광고에 도입한 경우가 많아서 눈에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습니다만, 저로써는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져서 그 이유를 따져봤습니다. 
원래 스트리트 아트라는 것은 도시기층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시내 중심가에서도 심심치 않게 낙서나 벽화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반달리즘으로 봐야할지 서브컬쳐로 봐야할지 애매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말하기 힘든 수준입니다만, 쉐파드의 것과 같은 ‘작품’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거리에 ‘작품’을 하는 것을 너그럽게 허용하느냐면, 그렇지 않고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은 벌금을 물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불법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 더 높을 뿐이지요. 쉐파드도 열 일곱번이나 체포당했다고 합니다. 
그럼 왜 이 사람들은 법을 무릅쓰고 거리에 낙서를 하거나, 거리에 ‘작품’을 하는 걸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단순하고 거칠게 말하자면, 그곳이 자신들의 것이라는 주장을 위해서 입니다. 자본에 잠식당한 도시의 거리에 발언권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거죠. 따라서 이들의 작품은 소수자의 편에 서서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고, 의식적이건 아니건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기 마련입니다. 공공장소에서의 미술활동은 공공의 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70년생 쉐파드는 거친 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적 구호가 선명한, 열혈 스트리트 아티스트처럼 보입니다만, 그가 사용하는 스타일이 뭔가 내용과 상충하는 듯이 보입니다. 
거리에서는 ‘싸고 빠르고 강하게’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페인트나 스프레이를 사용합니다만, 쉐파드는 스티커나, 실크스크린 등을 주로 사용합니다. 게다가 위에 보이는 ‘작품’ 같은 경우에는 이미지를 컴퓨터로 스캔받아 편집, 디자인해서, 대형 흑백 출력한 뒤에, 벽에 붙이고, 페인트로 칼라 작업을 한 뒤에 바니쉬로 마감한다는 대단히 복잡한 공정을 사용했습니다. 뭐, 커미션을 받아서 하는 벽화 작업이니까 당연히 순수한 의미의 게릴라 아트나, 스트리트 아트는 아닙니다만… 웬지 자본 집약적인 작업방식이 내용과 상충하는 듯이 보여서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지요. 그것과는 별개로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가 야기하는 묘한 긴장감을 어떻게 하면 발전적으로 수용할 것인가는 제가 쉐파드의 작품을 보면서 흥미를 가진 주제가 되었습니다. 
좀 더 조사를 해보니 쉐파드는 스트리트 웨어 쪽에선 아주 유명한 디자이너더군요. 그의 최초의 출세작이랄 수 있는 ‘obey’시리즈는 자체 제작한 스티커를 이용한 tag작업으로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프로파간다로지를 실험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쉐파드가 친구들과 설립한,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스케이트 보드용품 회사 로고인 ‘obey’의 티저 마케팅이기도 하더군요.
그러니까 쉐파드는 스케이트 보드 좀 탔던, 로드아일랜드 스쿨을 졸업한, 능력있는 광고 디렉터에, 실력있는 디자이너이자, 유명 스트리트웨어 업체 공동 창업자이고, 정치 예술가. 
간난곤난 고생하다가 오바마 포스터 한건으로 떠서, 일약 유명작가가 되어 엔디워홀 미술관에서도 전시하게 된 장한 개띠 동갑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다 마케팅이고 알고보니 엄친남. 흥.
‘정치적 예술가’라거나 ‘스트리트 아티스트’라는 딱지를 떼고 쉐파드의 작품을 봐도 재미있는 요소는 물론 많이 있습니다. 감각은 아주 뛰어난 작가라는 거죠. 각각의 독립된 이미지들을 아이콘화해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의미를 축적해가는 방식도 참고할만 했고, 장식적이고 상징적인 패턴 위에 이 아이콘을 재 배열함으로써 의미망을 구축해가는 방식도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어쨌거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앤디워홀 미술관이 쉐파드를 초대했을까 의아해 하면서 전시장을 내려오던 길에 잠깐 쉬려고 로비 전시관에 앉아 있자니, 벽에 붙어있는 앤디워홀의 어록 중 한 구절이 눈에 띕니다.

“Making money is art and working is art and good business is the best art.

Written by jinopark

February 18, 2010 at 4:5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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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64 – Andy Warhol – Diamond Dust Shoes,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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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 미술관 로비에 걸린 앤디워홀의 작품입니다. 멀리서 봐도 색감이며 배치며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집에서 자주 보던 작품이었는데, 막상 마주하니 매우 크더군요. 200호는 됨직한 대형 작품입니다. 
사진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작품 표면의 질감입니다. 검은 색으로 인쇄된 부분은 고운 모래 같은 것이 촘촘히 박혀 있어서 펄이 박힌 검은 벨벳 느낌의 질감입니다. 젊은 시절 광고계에서 잔뼈가 굵은 앤디워홀의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 된 작품입니다. 작품에 촘촘히 박힌 고운 가루가 얼마나 곱고 선명하게 반짝이던지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 봤습니다. 실크스크린의 망점까지 그대로 표현되었더군요. 질감이 특이해서 작품캡션을 다시 들여다보니 앤디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입니다. 
일전에 데미안 허스트 작품집에서 데미안의 작품중에 다이아몬드가루가 들어간 드로잉 작품을 봤었는데, 알고보니 앤디워홀도 이런 재료로 작업을 했군요… 선례가 있어서 그랬는지 지기 싫어하는 데미안은 다이아 몬드를 아예 빻아넣은 듯, 좀 더 굵은 알갱이를 사용했습니다만…  하긴, 지금처럼 유화물감을 화방에서 살 수 있게 되기 전에는 다들 보석이나 보석에 버금가는 것들을 갈아서 안료로 사용했더랬지요. 더 나은 재료에 대한 화가들의 욕심은 당연한 것이니까, 앤디워홀처럼 성공한 화가들이 귀금속을 재료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만, 솔직히 조금 질투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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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jinopark

February 16, 2010 at 2:3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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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점 63 – Andy Warhol – Andy Warhol, Silver Clou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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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Silver Clouds Installation, at The Andy Warhol Museum, 2000

엔디 워홀의 작품입니다. 어떤 면에서 현대 예술가의 이미지를 재고한 분이십니다. 예술가가 쿨 할 수 있고, 돈 밝힐 수 있고, 그게 예술이고, 스타일 수 있고, 그래서 총 맞을 수도 있고, 전설일 수도 있게 하신 분입니다.
전통적인 화가 – 빠트롱의 수익구조를 다변화해서 화가의 활동범위와 자생력을 높인 점도 평가 받아야 마땅하지요.
앤디워홀은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팝아티스트’입니다. 여기서 잠깐 ‘팝아트’라는 것에 대해 집고 넘어가자면,
사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팝아트’라는 용어가 과연 정확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사전적인 정의로 보나, 미술사적으로 보나, 팝 아티스트라고 분류되는 대가들의 작업이 가벼운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디서 잘못 되어서 팝아트=쉽고 재미있는 아트=영아트=싼아트의 도식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이젠 그렇게 굳어져서, 많은 분들이 앤디워홀의 작품을 철학부재의 감각적인 팝음악과 같은 미술작품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공산품에 둘러싸여 24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에겐 슈퍼마켓의 진열대가 바로 산수를 대신할 풍경이고, 영화의 한 장면이 역사화를 대신할 기념할 만한 서사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바로 그 공산품 생산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실크스크린의 방법론으로 수프깡통과, 코카콜라병을 찍어내기 시작한 것이 앤디워홀입니다. 그러나 ‘공장’을 차려 ‘공원’들과 함께 ‘공산품’들을 대량 생산하지만, 역설적으로 각각의 생산품은 늘 실수투성이여서 단 한쌍의 같은 상품도 발견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앤디워홀의 공장은 우리가 믿고 있는 생산시스템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바보 같은 것인가에 대한 우화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것의 핵심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것이 앤디워홀의 장기였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위의 작품, ‘은빛구름들’은 그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핼륨가스가 든 풍선 열개와 선풍기 몇대가 전부인 설치작품입니다만, 실제 공간에서 저 배게같기도 하고 짐승의 몸통같기도 한 금속성의 풍선들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한가로이 배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고 그 공간안에 걸어들어가 서 있는 경험은 시적인 감동입니다. 전시장에서는 벽에 부딛혀 떠도는 듯이 보였지만, 원래는 무용공연을 위한 설치작품이었다고 하니까, 실제의 벽이 아니라 여러개의 선풍기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떠다니는 ‘은빛구름들’이 연출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을 겁니다.

자유롭게 정처없이 떠다니는 듯한 초현실적인 저 은빛구름들은 보이지 않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사는 듯이 보이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우주적 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운명과도 닮아보입니다. 선풍기 몇 대와 비닐 풍선 열 개를 가지고 펼쳐보인 빼어난 시 한 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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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jinopark

February 16, 2010 at 2:4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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